판결이란 무엇일까. 나는 야간관광을 공부하는 사람이라 낮과 밤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주 들여다본다. 낮의 풍경은 누구나 쉽게 본다. 하지만 밤의 풍경은 조명이 꺼진 자리, 사람이 사라진 자리, 소리가 멎은 자리에서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재판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유죄를 말하는 법정의 언어보다, 무죄를 말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지점이 더 많은 것을 알려줄 때가 있다. 최근 오세훈 항소심 관련 보도를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특검이 무죄 판결에 상고 뜻을 밝히면서, 재판부가 결정적 증거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는 내용이었다. 판결의 결론보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조용히 지나간 자리들이 더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야간관광을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어둠은 관찰의 조건’이라는 사실이었다. 낮에 찍은 도시의 사진은 정보가 많다. 간판의 글자도 읽히고, 사람들의 표정도 보이고, 건물의 색깔도 선명하다. 그런데 그 사진에서는 도시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 밤에 찍은 사진은 정보가 적은 대신 구조가 보인다. 어느 골목에 불이 남아 있는지, 어느 건물만 창문이 켜져 있는지, 어디서 사람의 발소리가 멈추는지. 정보가 줄어드는 대신 패턴이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판결문을 읽을 때도 비슷한 감각을 느낀다. 판결문의 결론은 낮의 사진처럼 선명하다. 하지만 그 결론이 왜 그렇게 났는지는, 어떤 주장이 채택되고 어떤 주장이 조용히 지나갔는지를 따라가야만 보인다.
야간관광에서 ‘어둠’은 결핍이 아니다. 오히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가로등이 켜진 거리도, 꺼진 상점가도 모두 도시의 표정이다. 재판도 마찬가지다. 판사가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한 진술이 있다면, 그 진술이 왜 신뢰받지 못했는지, 다른 증거들은 어떻게 맞물렸는지가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항소심 재판부가 명태균 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본 대목도 결국 ‘무엇을 보지 않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보통 결론만 본다. 유죄다, 무죄다. 하지만 그 결론이 서 있는 바닥에는 수많은 진술과 증거, 그리고 침묵이 깔려 있다. 야간관광 큐레이터의 습관으로 말하자면, 나는 조명이 꺼진 골목부터 걷는 편이다. 그쪽에 도시의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곁가지를 붙이자면, 도시계획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야간 경관의 질’을 평가할 때 조도(照度)의 총량보다 조도의 분포를 더 중요하게 본다는 이야기가 있다. 밝기가 고르게 퍼진 거리보다,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리듬을 이루는 거리가 사람에게 더 많은 정보를 준다는 것이다. 재판의 설득력도 이와 닮았다. 모든 쟁점을 똑같은 밝기로 비추는 판결문보다, 어디를 밝히고 어디를 어둡게 남겨두었는지가 드러나는 판결문이 오히려 읽는 이로 하여금 구조를 파악하게 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유다. 법정의 조도는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증거능력과 증명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엇을 비췄고 무엇을 비추지 않았는가’라는 질문 자체는 두 영역에서 똑같이 유효하다.
물론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어둠을 본다고 해서 어둠 자체를 결론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판결문의 빈칸을 들여다보는 일과, 그 빈칸을 마음대로 채워 해석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법적 판단은 감정이나 추측이 아니라 증거와 절차 위에서 이뤄진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사안을 접할 때마다 전문가의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낀다. 복잡한 사건의 맥락을 이해하려면 마약변호사 같은 곳에서 다루는 법률적 관점을 참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해를 돕는 참고일 뿐, 판결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야간관광도 ‘밤이 낮보다 낫다’는 결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낮과 밤이 함께 있어야 도시가 완성되듯, 유죄와 무죄, 말과 침묵이 함께 있어야 재판의 풍경이 완성된다. 결론만 밝히는 사회는 낮의 사진 한 장만 보고 도시를 판단하는 것과 같다. 나는 조명이 꺼진 자리까지 천천히 걷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곳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까.
덧붙여, 야간관광의 현장에서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낮에는 그냥 지나치던 골목이 밤이 되면 갑자기 사람들로 붐비는 경우다. 같은 공간인데 시간대에 따라 전혀 다른 장소가 되는 것이다. 이 경험은 ‘하나의 사건을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는 사실을 자주 상기시켜 준다. 재판에서도 1심과 2심의 풍경이 사뭇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증거, 같은 진술인데 어느 지점에 조명을 비추느냐에 따라 사건의 윤곽이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판결을 읽을 때 결론보다 ‘조명의 배치도’를 먼저 본다. 어디에 빛이 모였고, 어디가 어둠으로 남았는지. 그 배치도를 그려보면 판결문이 훨씬 입체적으로 읽힌다. 물론 이것 역시 감상의 영역을 넘지 않도록 스스로를 계속 경계해야 한다. 어둠을 읽는 일은 어둠을 판정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